5F 서용선

서용선 작가는 역사, 전쟁, 신화, 종교 등의 주제들을 인간 본질에 대한 진지한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탐구한다. 그는 1980년대 초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수많은 역사적 기억들과 신화적 상징들을 그려오며 침잠되고 소외되었던 한국사의 단편들을 들추고 재생시켜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대형회화, 조각, 드로잉 등 70여 점에 달하는 작업들이 한국신문 130년의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신문박물관(일민미술관 5층)의 장소성과 역사적 맥락에 실험적으로 개입한다. 

AUDIO GUIDE

5F

<붓다 5>, <붓다 3>, <붓다 4>
Koya Cedar
2015

서용선 작가가 회화에서 조각으로 작업의 범주를 확장시킬 수 있었던 계기는 불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본래 불교 조각은 전형과 양식의 예술입니다. 부처와 각종 보살의 도상은 2,000여 년을 이어온 엄정하고 독특한 전형들이 역사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형상으로 전개되어 당대의 신앙과 사회상을 반영해왔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기존의 틀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 망치와 대패, 끌로 나무를 쳐내거나 장작을 패듯 모서리만 다듬어 어릴 적 자신의 무의식적 원형인 불심의 덩어리를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2015년 9월 일본 와카마야현 고야산 곤고부지의 개산 1,200주년을 기념한 ≪생명의 교향≫ 전시에서 서용선 작가는 일본 현지에서 바로 고야산의 삼나무 목재를 활용한 조각 작업을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깊은 신심에서 불교적인 영향을 이어받은 작가는 “번뇌에서 벗어난 순수한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기존의 불상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지만, 이에 대해 작가는 “화려하지 않고 아주 소박하며 원초적인 불상과 가까운 조각”이라고 말했습니다. 

<화해>
Acrylic on Newspaper
2012 

신문박물관의 ‘신문의 역사’ 코너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를 시작으로 130여 년의 신문 역사가 연대기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서용선 작가의 역사를 주제로 한 드로잉을 함께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작가가 지난 30년 동안 매일의 기록으로 작업한 1만여 점의 드로잉 가운데 일부를 엄선한 것입니다.

전시 작품 중 1934년 동아일보 위에 놓인 작품 <화해>는 작가가 뉴욕 포스트(New York Post) 영자신문 위에 그린 드로잉 작업입니다. 작품에 사용된 재료는 2012년 12월 5일자 신문으로, 작가는 이 작품을 뉴욕에 머물 당시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스케치북과 펜을 늘 가지고 다닌다”는 그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신문, 팸플릿, 과자 포장지 등은 작품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작품 <화해>에서는 강렬한 붉은색과 검은색의 아크릴 물감으로 두 인물 형상이 거칠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팔은 마치 악수를 하는 것처럼 일(一)자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두 인물의 형상은 2012년으로부터 6년 후인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악수를 한 역사적인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1934년의 동아일보, 2012년 12월 5일자 뉴욕 포스트, 그리고 2018년 4월 27일 남북의 ‘화해’가 서로 포개어지며 새로운 맥락의 역사가 다시 쓰이고 있습니다.

<뉴스와 사건>
Acrylic on Canvas
1997-1998

서용선 작가의 작업 세계는 역사 속 사건을 비롯해 풍경과 신화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다양한 사건들을 조합하여 화면을 재구성합니다.

작품 <뉴스와 사건>에서는 6.25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적 사건과 이에 얽혀있는 사람들을 관찰자의 눈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서용선 작가는 과감한 붓 터치와 강렬한 색을 사용하며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작품 <뉴스와 사건>은 한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기록하는 신문박물관의 거대한 윤전기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서용선 작가의 작품과 신문박물관의 유물 간에 유기적인 결합을 시도 함으로써, 역사적 사건을 보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