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F 조은지

조은지 작가는 진흙이나 먼지 등 도시의 부유물을 이용해 영역이나 정신의 경계를 재설정하는 실험을 해왔다. 작가는 동물의 피부, 신체를 통해 직관되는 사회-심리적 풍경에 관심을 두고 근대라는 역사의 테러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가변적 서사를 만들어낸다.

음악, 공연, 대화, 강연 등을 통해 예술이 행하는 “시간의 수행행위”에 집중해 온 그의 작업은 항상 변화하고 변동하는 매개 공간을 경유해 집단의 폭력뿐 아니라 그 폭력에 대한 기억의 집단화에서 소외되는 개인의 모습과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AUDIO GUIDE

2F

<땅, 땅, 땅, 흙이 말했다>
Performance, Installation
2019

조은지 작가는 진흙이나 먼지 등 도시의 부유물을 이용해 영역이나 정신의 경계를 재설정하는 실험을 해왔습니다. 작품 <땅, 땅, 땅 흙이 말했다>는 작가가 2012년부터 국내와 독일에서 진행한 이후, 세 번째 버전으로 진행되는 퍼포먼스 설치 작업입니다.

이번 퍼포먼스는 벽과 바닥이 이어져있는 인피니티 월에서 진행되어 이전 퍼포먼스들과 차이를 보입니다. 인피니티 월은 벽과 바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관람객에게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전시장 한 편에는 그랜드피아노 한 대와 함께 <땅>이라는 제목의 악보가 놓여 있습니다. 이 악보는 독일 음악감독 페터 간이 조은지 작가의 흙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보고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김혜영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맡았습니다. 피아노 연주는 작가가 흙을 던지는 소리와 함께 울려 청각적 자극을 극대화합니다.

퍼포먼스 당시 벽을 향해 흙을 던지는 행위와 던지는 순간 “땅” 하고 울리는 소리가 강력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의 '던지는' 행위가 '손에 든 물건을 다른 곳에 떨어지게 팔과 손목을 움직여 공중으로 내보내다'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고, '어떤 화제나 파문 따위를 일으키다' 또는 '어떤 문제 따위를 제기하다'의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F

<검정 우산을 쓴 여인의 초상>
Single channel video, 4min 10sec,
2019

조은지 작가의 이 영상 작업은 1965년에서 1966년 사이 벌어진 인도네시아 대학살에서 고초를 당하고 살아남은 '스리 무하야티'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대학살 당시 인도네시아에서는 많은 생존자들이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가족을 잃었고, 아이를 잃은 여성들은 검정 우산을 쓰고 반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영상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고 있는 스리 무하야티는 바로 이 ‘검정 우산을 쓴 여인’의 모습이 담긴 티셔츠를 입고 있습니다. 

이 영상의 초점은 생존자의 눈과 피부, 의복에 맞춰지고, 그 움직임에 따라 부유합니다. 주인공 여성은 계속 무언가를 증언하고 있지만, 특정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언어는 삭제되고, 주인공의 신체에 집중한 이 작품은 일종의 초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은지 작가는 “피해자가 겪은 사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한 사람의 신체에 주목하고 싶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겪어본 적 없는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고 경험하며 공감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깊은 고민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역사의 진실성이나 진정성을 드러내는 작업이란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오로지 실존하는 피해자의 신체에 집중하는 이 작업은 언어를 통해 전해 듣는 것이 아닌, 전혀 모르는 타인의 신체를 온전히 시각적으로 겪고 이에 감응하는 경험을 가능하게 합니다.